질문29. [미션 4]
어제까지 28개의 질문을 보셨고, 그에 대해 답을 했습니다.
(이제까지 질문을 제외하고) 삶에 있어, 이 질문을 받고 싶고 그에 대해 답을 한다면?
삶에 영향을 주는 사람들에 대한 질문은 있었지만
이번에는 감사한 사람들을 생각해보고 싶다.
⇝ 엄마 아빠
유전이든 환경이든 둘 다 결국 부모가 제공하는 것이기에
모든 건 엄마아빠 탓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사실은 거의 100% 진담) 말하는 나다.
내가 갖고 싶지 않은데 가진 것들, 갖고 싶은데 갖지 못한 것들에 원망도 많이 하지만
내가 누리는 것 하나하나 모두 엄마 아빠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들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살았던 거
사실 감사한 줄 모르지만 머리 좋은 거
무엇보다 내가 감사하게 생각하는 건, 어렸을 때 영국에서 살게 해준 것.
내가 성인이 되어 해외 생활을 해보니 이게 얼마나 큰 도전이었는지 알겠다.
더구나 당시는 해외 여행도 쉽게 하던 시절이 아니었으니
아이 둘을 데리고 훌쩍 낯선 곳으로 터전을 옮기는 게 얼마나 무서웠을까.
영국으로 가기로 결정이 나고
엄마는 부랴부랴 운전 면허를 따고 간다고 학원을 다니셨고
알파벳도 모르는 나를 영어 학원에 등록했다가 괜히 한국에서 잘못 배울 수 있다며 이틀인가 가고 말았던 기억..
영어라고는 I can't speak English / Where's the toilet? 딱 두 문장을 가르치고 학교를 보낼 때 엄마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애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얼마나 마음을 졸이셨을까.
영어가 서툰 엄마 대신 모든 행정을 담당해야 했던 아빠.
영국 지사를 관리하느라 바쁘실 텐데 집 구하고, 세금 내고, 학교에 일 있으면 학부모로 가시고..
영국에 있을 때 견문을 넓히자며 주말이면 영국 곳곳으로 여행을 가고 휴가 때는 유럽을 다니고..
지금 생각하면 대단하다.
난 내 한 몸 가누기도 힘들어 허덕이는데.
영국에서 산 몇 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평생 영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돼서 학교 다닐 때 남들보다 수월했다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
그 시절이 없었다면 나에게 통역대학원도, 구글도, 에어비앤비도 없었을 거고
지금과 같이 큰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도 없었을 테지.
(감사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첫 항목에서 너무 길어짐)
⇝ 토리미
나의 사랑 나의 기쁨.
나에게 와줘서 고마워.
트럭에서 수십 마리의 토끼들 중 너를 본 순간 너여야 한다는 걸 알았고
네가 나와 함께 한 9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
네가 떠났을 때 아주 잠시 '이렇게 힘들 걸 알았다면..' 하고 생각한 순간이 있었지만
내 평생 가장 잘한 일이 너를 데려온 거야.
지금도 너의 favourite spot들을 보면 네가 다리 뻗고 고개를 끄덕이며 숨쉬던 모습이 생각나고
비가 퍼붓는 날이면 같이 빗소리 들으며 바깥 구경을 했던 게 떠오르고
눈물이 나는 날이면 너를 껴안고 있으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생각나.
책꽂이에는 네가 물어뜯은 책들이 아직도 가득이야.
너를 뒷산에 묻던 밤 비가 억수로 쏟아져 삽 들고 온 식구가 산에 오르며
슬프면서도 우스웠지. 누가 보면 딱 의심할 만한 모습이었으니까.
너에게 한 약속 아직 지키고 있어 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토끼야.
⇝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인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해주는, 아낌없는 사랑과 따뜻함을 주는 이모랑 이모부
⇝ 정말 오래 기다려 주고 사랑을 준 내 첫 남자친구
⇝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싶게 만들어준 4번째 남자친구
나중에 너무 힘들었지만, 이런 사랑을 느껴보게 해준 것만으로 고맙다.
이런 감정을 평생 못 느끼는 사람들도 많을 걸...
⇝ 내가 나로 살 수 있게 영감과 용기를 주는 회사 사람들
⇝ 나를 알아가면서 포기하지 않게 같이 가준 상담 선생님
선생님 없었음 무서워서 도로 덮어버렸을 거야.
⇝ 오랜 친구들
오랜 세월에 멀어져간 친구들도 있지만 아직까지 남아준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