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28 June 2020

Q29. Who do you have to thank for the good things in life?

질문29. [미션 4]
어제까지 28개의 질문을 보셨고, 그에 대해 답을 했습니다.
(이제까지 질문을 제외하고) 삶에 있어, 이 질문을 받고 싶고 그에 대해 답을 한다면?


삶에 영향을 주는 사람들에 대한 질문은 있었지만
이번에는 감사한 사람들을 생각해보고 싶다.

⇝ 엄마 아빠
 유전이든 환경이든 둘 다 결국 부모가 제공하는 것이기에
 모든 건 엄마아빠 탓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사실은 거의 100% 진담) 말하는 나다.
 내가 갖고 싶지 않은데 가진 것들, 갖고 싶은데 갖지 못한 것들에 원망도 많이 하지만 
 내가 누리는 것 하나하나 모두 엄마 아빠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들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살았던 거
 사실 감사한 줄 모르지만 머리 좋은 거 
 무엇보다 내가 감사하게 생각하는 건, 어렸을 때 영국에서 살게 해준 것.
 내가 성인이 되어 해외 생활을 해보니 이게 얼마나 큰 도전이었는지 알겠다.
 더구나 당시는 해외 여행도 쉽게 하던 시절이 아니었으니 
 아이 둘을 데리고 훌쩍 낯선 곳으로 터전을 옮기는 게 얼마나 무서웠을까.
 
 영국으로 가기로 결정이 나고
 엄마는 부랴부랴 운전 면허를 따고 간다고 학원을 다니셨고
 알파벳도 모르는 나를 영어 학원에 등록했다가 괜히 한국에서 잘못 배울 수 있다며 이틀인가 가고 말았던 기억..
 영어라고는 I can't speak English / Where's the toilet? 딱 두 문장을 가르치고 학교를 보낼 때 엄마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애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얼마나 마음을 졸이셨을까.
 영어가 서툰 엄마 대신 모든 행정을 담당해야 했던 아빠.
 영국 지사를 관리하느라 바쁘실 텐데 집 구하고, 세금 내고, 학교에 일 있으면 학부모로 가시고..
 영국에 있을 때 견문을 넓히자며 주말이면 영국 곳곳으로 여행을 가고 휴가 때는 유럽을 다니고..

 지금 생각하면 대단하다.
 난 내 한 몸 가누기도 힘들어 허덕이는데.
 
 영국에서 산 몇 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평생 영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돼서 학교 다닐 때 남들보다 수월했다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
 그 시절이 없었다면 나에게 통역대학원도, 구글도, 에어비앤비도 없었을 거고
 지금과 같이 큰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도 없었을 테지.

 (감사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첫 항목에서 너무 길어짐)


⇝ 토리미
 나의 사랑 나의 기쁨.
 나에게 와줘서 고마워.
 트럭에서 수십 마리의 토끼들 중 너를 본 순간 너여야 한다는 걸 알았고
 네가 나와 함께 한 9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
 
 네가 떠났을 때 아주 잠시 '이렇게 힘들 걸 알았다면..' 하고 생각한 순간이 있었지만
 내 평생 가장 잘한 일이 너를 데려온 거야.
 
 지금도 너의 favourite spot들을 보면 네가 다리 뻗고 고개를 끄덕이며 숨쉬던 모습이 생각나고
 비가 퍼붓는 날이면 같이 빗소리 들으며 바깥 구경을 했던 게 떠오르고
 눈물이 나는 날이면 너를 껴안고 있으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생각나.
 책꽂이에는 네가 물어뜯은 책들이 아직도 가득이야.
 
 너를 뒷산에 묻던 밤 비가 억수로 쏟아져 삽 들고 온 식구가 산에 오르며 
 슬프면서도 우스웠지. 누가 보면 딱 의심할 만한 모습이었으니까.
 너에게 한 약속 아직 지키고 있어 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토끼야.
 



⇝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인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해주는, 아낌없는 사랑과 따뜻함을 주는 이모랑 이모부
 
⇝ 정말 오래 기다려 주고 사랑을 준 내 첫 남자친구

⇝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싶게 만들어준 4번째 남자친구 
 나중에 너무 힘들었지만, 이런 사랑을 느껴보게 해준 것만으로 고맙다.
 이런 감정을 평생 못 느끼는 사람들도 많을 걸...

⇝ 내가 나로 살 수 있게 영감과 용기를 주는 회사 사람들

⇝ 나를 알아가면서 포기하지 않게 같이 가준 상담 선생님
 선생님 없었음 무서워서 도로 덮어버렸을 거야.

⇝ 오랜 친구들
 오랜 세월에 멀어져간 친구들도 있지만 아직까지 남아준 친구들




Q28. What can you start doing today to get to your goal?

질문28. [life 21]
‘미래의 되고 싶은 당신’을 위해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을 하나 정하고 그에 대한 플랜을 짜 보세요.


⇝ 명상
 아.. 근데 진짜 지금은 시작 못 하겠다.
 명상 같은 습관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해야 그래도 습관으로 만들기가 쉬운데
 난 얼마 있음 런던으로 돌아갈 거고, 가서는 또 집을 옮길 생각이라..

 맞아 핑계야...


⇝ 글쓰기
 이건 그래도 명상만큼 하기 힘든 건 아니라..
 매일 조금씩 쓰려고 한다.
 이미 10주 동안 매일 10문장씩 쓰는 글쓰기 모임에 등록을 했으니 열심히 따라가기만 하면 될 듯.
 서로 공유할 사람들도 있어서 서로 독려해가며 쓸 수 있을 것 같다.

 일단은 무작정 쓰는 데 초점을 두고 차차 주제를 정하고 체계를 잡아가며 살을 붙여가야지.


Friday, 26 June 2020

Q27. How long do you want to live? And what do you want to achieve and leave behind?

질문27. [life 20] 
몇 살까지 살고 싶나요? 그때까지 무엇을 이루고 싶나요?
*이 세상에 어떤 흔적을 남기고 싶나요?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기억하길 바라나요?


한때 목표가 뭐냐고 물어보면 "오래 사는 거"라고 답했던 때가 있었다. 꽤 오래..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은 지금도 변함없다.

그 계기는 뜬금없지만 김대중 대통령 당선이었다.
세 번인가 낙선하고 네 번째에 당선될 것으로 알고 있고, 그때 70대였다.
출마와 낙선을 반복하더니 끝끝내 대통령을 하게 된 건, '오래 살아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70대면 사실 평균 수명 한참 아래니 그때까지 산 게 오래 살았다고 할 순 없지만 
어쨌든 그때 갑자기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해보려면 오래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고
그 뒤로 쭉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건강이 전제된 수명이다. 살아가는 게 고통이 아닌 건강한 상태로 오래 사는 것.
구체적으로는 건강하게 오래 살다가 더 이상은 사는 게 기쁨보다 고통이 크겠다는 판단이 서는 시점에 안락사로 마감하는 게 내가 꿈꾸는 내 마지막이다. 
죽음까지도 계획하고 통제하려는 걸 보니 난 정말 control freak.

⇝ 우주 여행
 우주 여행은 진짜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다. 
 영화 Contact를 봤을 때부터 extraterrestrial life의 존재를 확신했고
 다만 서로가 아직 만나지 못했다고 믿었다.
 
 2006년(오 너무 옛날) 한국 최초 우주인 선발대회에 지원했었다.
 물론 안 될 거라는 걸 알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서류, 필기를 거쳐 3차까지 통과했지만 심층 신체검사를 받으러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가지 않으면서 끝이 났다.
 그래도 이소연과 고산을 응원했고 신기하게도 훗날 두 분 다 직접 만나뵙는 영광을 누렸다.
 
 대한민국 대표 우주인이 될 기회는 놓쳤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그냥 돈 벌어서 내 돈으로 가자'가 됐을 뿐.
 지금도 1억 원 정도면 국제우주정거장에 다녀올 수 있다. (몇 년 전 기준이니까 지금은 다를 지도)
 스페이스X의 성공으로 가격은 점점 떨어지겠지.

 우주 여행이라고 하면 거창한데, 내가 원하는 건 내 두 눈으로 동그란 지구를 보는 것.
 내가 사는 곳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 경이로움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


⇝ 스토리
 책이든 어떤 형태든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
 누구나 자기 스토리가 있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드라마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고 용기를 줄 수 있다면 내 삶은 의미있지 않을까.



나를 이렇게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 냉정한 듯하지만 따뜻했던 사람
 ⇝ 많이 부족하지만 끊임없이 노력한 사람
 ⇝ 표현이 서툴지만 사랑이 많았던 사람


Thursday, 25 June 2020

Q26. What would be your 10 commitments if you were president?

질문26. [life 19]
당신은 올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당신과 당신 이웃의 삶을 더 좋게 변화시키기 위해
(예산에 상관없이) 10가지 공약을 바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공약은 어떤 것이었나요?


어느 지도자든 좋은 의도와 사명감을 갖고 나라를 이끌어갈 거라 믿는다.
누군들 임기가 끝나고 뒤돌아봤을 때 세상이 더 나아졌다는 자부심을 갖고 싶지 않을까.
문제는 현실적으로 제약이 너무 많고 각종 이해관계가 얽히고 섥힌다는 것.

대통령을 꿈꿔본 적도 없지만 예산이 무제한이라고 해도 변수가 너무 많을 것 같다.
정치에 그닥 관심도 없고 어느 정당이 있는지도 이제 잘 모르지만
최근 충격을 받았던 건 타다금지법이었다.
혁신 혁신 할 때는 언제고, 택시업계와 어느 정도 조율해가며 조심조심 성장하던 회사를 한순간에 문닫게 한 건 결국 택시조합의 반대가 무서워서, 그 표를 잃을까 두려워서인 게 아닌가.
택시 서비스에 불만을 갖고 해외 나가면 우버에 감동하며(나름의 문제도 있지만) 그나마 타다가 있어서 좋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보다 목숨 걸고 반대하는 소수의 입김이 더 셌던 거지.

어쨌든.. 공약이라기보다 나의 바람을 꼽자면

⇝ 비현실적인 처벌 수위
  예전부터 갖고 있던 불만이다. 
  음주운전은 살인미수라고 생각하는데 처벌수위가 강화됐다고는 하나 여전히 가볍다.
  그밖에 폭력 등 강력범죄도 처벌이 약하고 그나마도 온갖 이유로 감형되니..
  여전히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이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법 개정과 엄격한 집행으로 보다 안전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 과학기술에 장기적인 투자
  역시 고질적인 문제다. 
  단기적으로 성과를 보이기 어렵고 사기업에서 투자하기 어려운 분야의 연구는 정부 지원 없이는 힘들다.
  인류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만 사업성이 떨어지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려면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선배와 동기들이 유학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도 자연과학 분야 박사에 대한 대우가 놀라울 정도로 별로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많은 분야에서 뛰어난 대한민국이지만 꼭 제품으로 이어지지 않는 근본적인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길..
 

⇝ 환경 보호
  환경은 개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만 한 개인이 노력한다고 바꿀 순 없는 부분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이젠 일상이 된 미세먼지를 생각하면, 한 국가의 의지만으로도 부족하다.
  감탄을 자아내는 친환경기술이 눈에 띄지만 상용화되지 않는 건 아직까지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분야에서야말로 정부가 나서 지원하고 캠페인이나 법 개정을 통해 일상에서의 변화를 가져와야 하는 게 아닐까.
  

⇝ 함께 사는 법 (진로 교육, 안전 교육, 인성 교육)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 하에서는 살아가는 데 정말 필요한 교육이 등한시 된다.
  내가 누군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를 모른 채 전공을 선택하고
  위기의 순간 내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기본적인 안전 교육도 받은 기억이 없다.
  무엇보다 이 세상을 더불어 살아가는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나. '도덕'과 '윤리' 수업을 들었지만 나에게는 수학보다도 더 실생활과 연결되지 않는 내용이었다.
  진로, 안전, 인성 교육을 제대로 커리큘럼에 넣는다면 (서류상이 아니라 진짜로)
  조금은 더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 고령화 사회 대비
  점점 역삼각형 인구구조의 사회가 되고 있는데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을까.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드는 데 대한 대책은?
  주변에 보면 치매환자를 돌봐야 하는 가족들이 늘어가는데 보호자에 대한 교육이나 심리 상담도 부족해 보인다. 
  이미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지만 더 늦기 전에 포괄적인 대책과 플랜이 나왔으면..


⇝ 문화 산업
  K-POP과 드라마 덕분에 한국 문화의 위상이 빠르게 높아졌다.
  넷플릭스와 같은 플랫폼 덕분에 콘텐츠만 좋으면 단번에 전 세계 시청자를 확보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이렇게 한국의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한국이라는 브랜드가 가진 가치는 높지 않다. 단편적인 콘텐츠(특정 연예인, 드라마, 노래)의 인기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문화 콘텐츠로 브랜딩을 성공적으로 해낸 모범국가는 일본이 아닐까. 
  BTS와 미스터 션샤인, 킹덤 덕분에 한국 가보고 싶다는 주변 지인들이 늘었지만 여전히 '일본 갈 때 들르고 싶다'가 대부분이었고, 시간적인 제약으로 결국 포기해야 했다는 사연이 즐비하다.
  한국이 가진 가치있는 전통 콘텐츠(한글, 한복, 한식)와 역사와 현대 문화를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했으면 좋겠다. 지역 특색을 살리고 특산물과 스토리를 만드는 작업을 계획적으로 체계적으로 해나가야 계속 또 오고 싶은 나라가 된다.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보통 '아직 멀었다', '아래쪽만 돌았다. 홋카이도를 못 가봤다' 등 다시 갈 날을 기다리지만, 한국을 왔던 사람들은 '가봤으니 됐다'는 생각을 하는 인상이었다.
  코로나로 여행은 그림의 떡인 시대를 살고 있지만, BTS 온라인 콘서트도 매진되는 세상이니, 한국 문화가 명확한 아이덴티티를 가지게 되길..
 

Wednesday, 24 June 2020

Q25. What are you doing to be happier?

질문25. [life 18]
당신은 지금보다 ’좀 더’ 행복하고 싶나요?
그러기 위해 무엇을 더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하나요?


⇝ 나를 사랑하기
 Self-awareness를 높이면서 나를 이해하는 게 행복의 시작이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모르고는 행복할 수 없으니까.

 더 나아가 self-compassion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쩌면 스스로에게 가장 엄격하고 야박하니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해주듯 나를 사랑해주자.






⇝ 맛있는 커피와 음식
 맛있는 걸 먹는 것만큼 쉬운 행복이 있을까.
 Just a few of my favourite things:

 진짜 맛있었던 베를린 Ben Rahim 플랫화이트
  

 꾸덕한 마이디어스윗 케익 한 조각
  










 달콤바삭 대가방 탕수육

 본고장보다 맛있는 젤라띠젤라띠 피스타치오 젤라또














⇝ 사람/관계
 사실 나의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은 미치는 건 관계다. 
 가장 자신없고 두려운 게 관계이기도 하고.
 상처 받을 걸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을 열어야겠지.
 용기를 내지 않으면 사랑도 없으니까.

⇝ 취미 만들기
  나를 즐겁게 해줄 취미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꾸준히 할 수 있고, 재밌는 걸로.

Tuesday, 23 June 2020

Q24. What are your strengths?

질문24. [life 17]
당신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탁월하냐 안 하냐가 아니라, 그냥 내 느낌대로 장점과 강점을 생각해 보세요)


장점이라.......
단점을 말하라 하면 속사포 랩을 쏘아줄 수 있을 거 같다.


5년 전의 나에게 물었다면..
- 책임감 있게 일 잘 하는 거
- 안 하면 모를까 하면 제대로 하는 거
- 머리 좋은 거(엄마가 어디 가서 이런 말 하지 말라고 했는데 😆 )
- 사람 잘 챙기는 거

라고 답했을 거 같고

지금은..

⇝ 공감능력/연민
 몇 년 전까지는 내가 차갑고 냉정하다고 생각했다.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울지 않았고 동정심도 별로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내가 냉정한 게 아니라 그 반대로 너무 공감하게 돼서 방어막을 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다른 사람의 사연과 스토리에 내 마음도 견딜 수 없이 아파 회피하는 거였다.
 예를 들면, 큰 사고가 발생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뉴스를 보면 팩트를 다루는 부분은 볼 수 있지만
 개개인의 가슴 아픈 사연으로 넘어가면 채널을 돌려버린다.
 몇 년 전 아는 분의 어린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차마 찾아뵙지 못했고
 심지어 회사 동료들이 장례식장에 다녀와서 병이었는지 사고였는지를 설명하려고 할 때 안 듣겠다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슬픔을 느끼는 걸 고통스러워해서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이렇게 알게 됐다.
 하지만 슬픔을 느끼지 못하면 기쁨도 느낄 수 없다는 것, 슬픔도 삶의 일부라는 걸 받아들이고 연습하고 있다. 그러면서 내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물론 상처도 받지만 그로인해 더 충만한 삶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

⇝ 예민함
 공감능력과 마찬가지로 내 삶을 피곤하게 만드는 요소다.
 남들보다 감각이 예민해 시끄러운 곳에 있으면 남들보다 더 고통스럽고 냄새에도 민감해 피곤하다.
 일상에서 나를 더 빨리 지치게 하지만 그만큼 나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좋아하는 향을 맡으면 남들보다 더 큰 기쁨을 느끼고 (헤어와 바디용품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맛의 작은 차이도 appreciate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할 때도 다른 사람의 입장과 기분을 더 잘 헤아려 customize 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어떤 것 때문에 괴로운지, A 때문에 화를 내고 있지만 사실은 B가 걸렸던 거라는 걸 내가 먼저 눈치 채고 그걸 끄집어내줄 수 있다.

⇝ 호기심/성장 욕구
 끊임없는 호기심과 더 나아지려고 하는 욕심..
 나를 탐구하고 이해하려는 이 노력을 엄마는 옆에서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신다.
 넌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사니. 넌 왜 너를 들들 볶니.
 맞는 말이다. 피곤하다.
 하지만 난 더 나은 사람이고 싶은 걸. 더 행복하게 살고 싶은 걸.
 나아가 나로 인해 이 세상이 조금은 더 나은 곳이 되었으면 한다.


이쯤에서 단점을 나열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멈추기로 캭.

Monday, 22 June 2020

Q23. What does work mean to you? What do you want to do?

질문 23. [life 16]
당신에게 ‘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래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요?


나에게서 일을 빼앗으면 그게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일이 너무 중요하다.

Work life balance로 보면 구글 시절에는 work=life였다. 
새벽 1시 넘어야 퇴근하는 날이 많았고 주말도 사무실에서 보내기 일쑤.
밖에서 노는 것도 회사 사람들이랑 놀았으니 경계가 없었다.

에어비앤비에서는 내 삶을 지켜야지, 회사를 떠나도 죽을 만큼 힘들지 않게 야근도 하지 말고 내 영역을 확보해야지 생각했다.
퇴근은 제때 하지만 여전히 저녁시간에도 일했고
예전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여전히 회사 사람들이랑 논다.
How's life? 라고 누가 안부를 물으면 I don't have a life 라고 농담반 진담반 답할 때도 많다.

일은 나에게 돈벌이나 생계 수단이 아닌
내가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이고 내 몫을 하고 있다는 성취감,
인간관계에서 오는 따뜻함,
내가 누군지를 정의해주는 정체성을 모두 제공해주는 수단이다.

관계를 맺는 게 두렵고 잘할 자신이 없기에
노력하면 뚜렷한 성과가 보이는 일에 매진했다.
일은 ROI가 분명하니까.

런던에서 락다운을 겪으면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 느꼈다.
하루 6-7시간씩 집에서 회의만 하면서 영화 매트릭스가 떠올랐다.
나는 Zoom 세상에서만 살아있고 몸뚱이는 그냥 책상 앞에 하루종일 앉아있었다.
그동안 꾸준히 투자한 취미가 있었다면 좀더 견디기 쉬웠을 텐데..
내가 결혼해서 가족이 있었다면 락다운이어도 곁에 누군가가 있어서 덜 외로웠을텐데..
(물론 결혼한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하루 24시간, 몇 주 갇혀 있으니 꼴도 보기 싫다고 😂 )

나에게 너무나 소중하고 나에게 많은 걸 가져다주는 게 일이지만
work는 work로
life는 life로 분리해야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한다.

앞으로 내가 '일'로 하고 싶다고 생각한 Work 후보들은..

 ⇝ Coaching / Counseling
  코칭이나 심리상담 쪽으로 해보고 싶다.
  people managing을 하면서 어느 정도는 이미 하고 있다고 느끼는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게 보람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 Localization Consultation
  이미 십여년을 몸담은 분야다 보니 전문지식을 나누고 싶다.
  그게 강연의 형태든, 스타트업 대상으로 컨설팅을 제공하든 의미있을 것 같다.

 ⇝ Learning & Development
  Insights Discovery와 같은 좋은 툴을 이용한 직원 교육에도 관심이 있다.
  Inhouse든, 기업 대상 강사 같은 역할이든..


나에게는 더 어렵고 중요한 Life를 만들어갈 내 관심사는..

 ⇝ 비행기 조종
  고등학교 때 공군사관학교를 아주 잠깐 생각했다가 포기한 이후 리스트에서 빠진 적이 없다.
  돈과 시간만 있음 내가 직접 하늘을 날 수 있으니까.
  그 돈과 시간이 좀 많이 들어서 그렇지 ㅎㅎ

 ⇝ 대형 면허
   비행기만큼은 아니지만 트레일러를 한 번 몰아보는 게 꿈.
   18 wheeler는 좀 비현실적이고 덤프트럭이나 대형버스 정도는 해볼만하지 않나.
 
 ⇝ 글쓰기
   앞으로도 꾸준히 하고 싶은 글쓰기.
   지금은 소재가 tangible한 걸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말랑말랑하면서도 메시지가 있는 글을 쓰고 싶다.

 ⇝ 악기
   싫증을 잘 내는 내가 꾸준히 하기 가장 어려운 취미다.
   어렸을 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했지만 지금은 피아노만 간간히 뚱땅거리는 정도.
   (악보도 이제 못 보겠어서 음이름 미리 적어놓고 😅 )
   뭔가 하나는 하고 싶다 나이 들어서도 내 손으로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엄청난 기쁨이 될 듯.

  ⇝ 미술/공예
    통역대학원 다닐 때 2년 간 한지공예를 했었는데 진짜진짜 좋았다.
    일주일 내내 하루종일 머리에 쥐가 나도록 통역을 하고 주말에 공방에 가서 3시간동안 아무 생각없이 손만 놀리는 시간이 힐링이었다.
    한지공예가 아니더라도 손으로 할 수 있는 취미를 만들고 싶다.

  ⇝ 운동
    수영이나 등산?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운동 하나 꾸준히 하고 싶다.
    주변에선 골프를 하라고.. 진짜 애기 때 아빠 따라서 몇 번 쳐봤는데 너무 재미없어.

  ⇝ 명상
    나한테 진짜 도움이 될 습관인데 이렇게 마지막에 적는 걸 보니 어지간히 하기 싫은가보군.
    좀 하라구 쫌.



Q22. What are your thoughts on marriage?

질문 22. [life 16]
‘결혼’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이야기 해 주세요.
당신 삶에 그것은 무엇인가요? 어떤 의미인가요?


아마도 한 5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결혼할 거라는 걸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
막 결혼하고 싶다기보단 당연히 할 거라 생각했다.
20대까지는 별 생각없이 인간도 한 생명체로서 DNA를 이 세상에 남기는 게 본능 아닌가, 정도였고
토끼를 9년 키우면서 내가 무언가를 돌보고 사랑하는 데서 엄청난 행복을 느낀다는 걸 알게 됐다.

이런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최근 5년 정도?
나이가 들고 미혼인 친구보다 기혼이 늘어가면서도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서
아 내 인생에 결혼이 없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처음 했다.
내 자신을 점점 알아가면서 그 이유가 '괜찮은 사람을 아직 못 만나서'가 아니라
'내가 아직 누군가를 만날 준비가 안 돼서'라는 걸 알게 된 후에는
사람을 찾는 노력조차 하지 않게 됐다. 좋은 사람이 나타나도 내가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거니까.

포기한 건 아니다. 
여전히 누군가를 만나 (쉽게는 아니겠지만) 남들 다 하는 결혼 하고 싶고
아이도 낳고 싶다.
누군가에게 그 정도로 마음을 열고 인생을 건다는 건 두려운 일이지만
그 용기를 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내가 용감해질 수 있게 도와줄 용식이('동백꽃 필 무렵') 찾습니다.

Saturday, 20 June 2020

Q21. Was there a time you successfully transformed yourself with intention? How did you do it?

질문 21. [이벤트 4]
노력으로 삶을 바꾼 경험이 있나요? 그 비결,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 Drink water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이겠지만 난 물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정말 목이 마르다는 생각이 들어야 마셨다.
 (술 1리터는 마셔도 물 1리터는 못 마시겠..)

 그러다 물이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면서 습관을 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생수병을 꼭 들고 다녔고, 목이 마르기 전에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다.
 지금은 물 없인 아무데도 못 간다. 
 여전히 하루 1리터에는 못 미치지만 물 마시는 습관만큼은 완벽하게 체득했다.


⇝ Eat healthy
 나쁜 음식을 많이 먹는 편은 아닌데 (탄산음료, 인스턴트 음식 등)
 몇 년 전 PT를 받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식습관을 바꿨다.
 설탕만큼이나 소금이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됐고 점점 싱겁게 먹기 시작했다. 
 원래도 해물찜이나 전골류처럼 식재료가 뭔지 모를 정도로 양념맛이 강한 음식은 선호하지 않는데 이젠 빨간 국물은 거의 쳐다보지도 않는다.
 재작년에는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과 새해맞이 챌린지를 해서 한 달 동안 음식 사진을 올리며 식단을 지켜 먹기도 했다. 
 신기하게 몸은 쉽게 적응해서 챌린지가 끝나자마자 (트레이너의 허락 하에) 최애 중국집 대가방에 가서 탕수육을 먹었는데 맛이 너무너무 강하더라 ㅎㅎ


⇝ Be vulnerable
 너무나 어려운, 어쩌면 평생 노력해야 할 것 같은 부분.
 강한 척하지 않기, 안 아픈 척 하지 않기, 괜찮은 척 하지 않기.

 오랫동안 실제 나보다 훨씬 더 괜찮은 사람인 것처럼 살아왔다. 
 너무 몸에 배어 나 스스로도 속을 정도로. 
 몇 년 전 '센서티브'를 읽은 것을 계기로 나는 사실 자존감이 낮고 나의 못난 모습을 보이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남들 앞에서(심지어 나 스스로에게도) 포장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진짜 감사한 건 이 깨달음을 얻었을 때 Diversity & Belonging이 최고 가치인 에어비앤비를 다니고 있었고 내 주변엔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자기 모습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코리아 대표를 지낸 패트릭은 전형적인 vulnerable 할 줄 아는 리더였다. 카리스마 넘치고 결단력, 책임감, 포용력 등 리더의 요건을 두루 갖춘 분이지만 가장 존경했던 건 약한 모습을 감추지 않는 것. 회의 중 한창 열변을 토하다가도 '사실 아무것도 모르면서 하는 말이야', '안 되면 망하는 거지 뭐' 등 자신 없는 건 자신 없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힘들 때 강한 척하는 대신 '아 너무 힘들어, 좀 도와줘' 식으로 자신을 드러냈다. 언뜻 보면 리더가 이런 모습을 보여도 되나, 사람들이 무시하거나 따르지 않으면 어쩌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런 모습을 보고 더 따르게 된다. 그게 vulnerability의 힘이다.

 그래서 나도 팀원들에게 솔직하게 얘기한다. 
 예를 들면 최근 흑인 사망 사건으로 다들 괴로워할 때, 나는 인종 차별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 지 몰랐다. 글로벌팀 관리자로서 아무일 없는 듯 넘어가기는 싫었지만, 이 민감한 주제를 세련되게 다룰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고민하다 결국 솔직하게 접근했다.
 '이 사태로 괴롭지만 솔직히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다.
 어렸을 때 학교 전체에 유일한 동양인으로서 인종차별을 직접 겪었고, 
 지금도 영국에서 사는 한국 사람으로서 남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인종 차별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다같이 얘기해보면 좋겠다고.'

 Vulnerability도 연습하면 조금씩 되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견딜 수 없이 싫은 내 모습도 솔직하게 보여주기 시작했고
그런 모습을 보면 나를 싫어하거나 무시할 거라는 게 나의 근거 없는 두려움일 뿐이라는 걸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오히려 응원해주고 더 좋아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용기를 갖고 노력하는 중이다.

Friday, 19 June 2020

Q20. How would you spend your last week of life?

질문 20. [이벤트 3]
이번주 삶이 끝, 마감된다면 하고싶은 일은?


몇 년 전, 북클럽 사람들과 When Breath Becomes Air(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고 앞으로 2년만 더 살 수 있다면 그 2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공유한 적이 있다.
그 때 난 그 중 1년을 런던에서 보내겠다고 했고,
내 런던을 향한 그리움/갈망이 그 정도인 걸 깨닫고 놀라 런던행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계기가 됐다.

코로나 때문에 망했지만 어쨌든 런던에서 살 수 있게 된 지금, 내 답은 달라졌을까?

일단 글을 많이 쓸 것 같다.
천천히 나이들면서 하고 싶었던 말들을 얼른 써내려가야 한다는 조급함이 생기겠지.
내 비공식 멘토 Renn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손주들을 위해 글을 쓰고 있다.
그들은 만나보지 못할 Renn의 부모 얘기 등 가족의 역사에서부터, Renn 자신의 경험을 담은 글이라고 한다. 아직 보지 못했지만 지혜와 사랑이 가득 담긴 글이 될 것 같아 기대된다.

내가 처음으로 돈을 받고 쓴 글은 퍼블리(PUBLY)에 올린 로컬리제이션에 관한 글이다.
많은 기업들이, 특히 한국 스타트업들이 로컬리제이션을 잘 몰라 세계화에 실패하는 게 안타까웠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을 매번 설명해야 하는 것도 지겨워서 한 번 제대로 설명해버려야지 싶은 마음도 있었다. 
올해는 중간관리자로서 people managing에 관한 글을 쓰기로 계약을 했는데
코로나로 정리해고 등 위기를 겪으면서 내가 부족하다는 걸 많이 느껴 망설이고 있다.

아직은 준비가 안 됐지만 꼭 쓰고 싶은 책은 사람에 관한 책이다.
작년 '일간 이슬아'를 읽으면서 아주 사소한 일상이 어떻게 감동을 주는 글이 될 수 있는지를 봤다.
가족과의 일상적인 대화가 따뜻한 시선과 깊은 사색으로 훌륭한 에세이가 되는 걸.
상처와 두려움을 이겨내고, 혹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온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괜찮아져야겠지.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 이번 주가 마지막이라면..
엄마 아빠 언니와 시간을 보낼 것 같다.
하고 싶었는데 못한 말들을 해야지.
내 물건도 정리하고, 소중한 사람들한테 인사도 하고.
남은 사람들을 위해 주변 정리를 하는 게 가장 의미있을 것 같다.



Q19. What random events changed your life?

질문 19. [이벤트 2]
우연히 일어난 일이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경험이 있나요?


아무래도.. 구글이겠지?
우연히 내 앞에 나타나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든 건.

통역대학원을 졸업하고 최소 1년 정도는 통역 일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수능 다시 봐서 한의대 가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만 고생해서 졸업했으니 그래도 한 번 써먹어보자는 심정으로)
그래서 졸업을 앞둔 1월부터 살짝살짝 통역을 해보고 있었는데
아는 선배가 괜찮은 프로젝트가 있다며 딱 두 달만 해보라고 연결해줬다.
그게 구글과의 첫 만남이었다.

두 달이 넉 달이 되고 총 4개월의 프로젝트가 끝난 후 입사를 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까지 회사를 다닌다는 건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기에 (전공을 살리고 싶었을 땐 NASA나 연구소, 아님 교수를 생각했고 통역사의 매력은 프리랜서라고 믿었으니까)
거절했다.
난 통역을 하고 싶다고.
정규직이 부담스러우면 일단 계약직으로 해보고 6개월 후에 정규직 전환을 선택하게 해주겠다고 해서
그럼 해볼까 싶어 프로젝트가 아닌 진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 6개월은 모든 게 재밌고 신기했다. 막 세상을 알아가는 어린 아이처럼.
회사는 이런 거구나.. 이메일을 쓰는 법에서부터 회의를 하고 업체를 관리하고 결정을 내리는 등
모든 게 새로운 경험이다보니 하루하루가 재밌었다.

6개월이 지났을 때 갈등을 할 수밖에 없었다.
통역은 기술이라 갈고 닦지 않으면 녹슬기 마련이고
게다가 아직 시작도 안 해본 병아리 통역사로 너무 오래 쉬면 시장에서도 잊혀질 위험이 있었다.
선배와 동기들도 거기서 뭐하냐며 빨리 나오라고 성화였다.

하지만 한 번 맛본 구글은 끊어내기 어려웠고
딱 1년만 제대로 정규직으로 다녀보자는 생각으로 전환했다.
딱 1년이 결국 8년이 돼버렸지만..

구글은 나에게 일하는 법, 일하는 기쁨을 가르쳐줬고
사회생활의 모든 첫 경험을 함께 했다.
첫 회의, 첫 이메일, 첫 발표, 첫 출장, 첫 평가, 첫 승진..

내가 원하는 게 뭔지도 알게 됐다.
무언가를 바꾸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나에게 중요하다는 것.
그래서 통역사라는 직업에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게 됐다.
통역사는 speaker의 말이 잘못된 것이라도 그대로 옮겨야 하는 숙명을 가진 직업이니까.
대신 내가 보람이나 재미를 느끼는 분야의 통역이나 번역은 가끔 한다.
회사를 그만둬도 통번역으로 먹고 살 순 있겠지 싶은.. 나에게 보험 같은 존재라고 할까.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나의 가치관이 정립됐다.
사무실이 내 집이고 구글이 곧 내 삶인 나날들을 보냈다.

물론 퇴사할 때 그 대가를 치뤘지. 😂
(아직 결혼도 못 해봤지만) 이혼하는 심정으로 퇴사했다.
여전히 사랑하지만 함께는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어 헤어지는 느낌으로.
다시는 이만한 남자를 만날 수 있을까?
내가 이 사람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정말 연인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심정으로 떠났다.
지금은 다른 남자(아니 회사)를 만나 잘 지내고 있지만.

내 인생은 구글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하면 너무 드라마틱한 것 같지만
"Google happened"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나에게 큰 영향을 줬다.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고 (너무 자주 놀러가고)
앞으로도 응원할 거다 (주식도 아직 들고 있지만 돈 때문은 아니라고.)



Wednesday, 17 June 2020

Q18. What are you most afraid of?

질문 18.  [이벤트 1]
가장 두려운 게 무엇인가요? 


⇝ 벌레
 entomophobia가 있나 싶을 정도로 다리 여섯개 이상인 생물체를 극도로 무서워한다.
 그나마 파리류는 기겁하지 않을 정도?
 원래 지금 내 포지션은 싱가포르에서 근무하는 자리였는데 적도에 위치한 싱가포르는 바퀴벌레의 성지라.. 지원하면서 반드시 싱가포르에서 일해야 하는 거면 지원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입사 후 3주를 싱가포르에서 교육 받았는데.. 
 가운데 손가락 크기의 반질반질 윤이 나는 브라운 칼라의 바퀴벌레가 샤워실에서 아침 저녁으로 나오면서 공포의 3주를 보냈다. 출장 끝나고 귀국한 날 내 침대에 쓰러져 18시간 연속으로 잤던 기억이.. 

 작년말 뉴질랜드에서 창문을 열고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고 있는데
 '딱'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 까만 게 내 허벅지 위로 떨어지는 걸 봤다.
 느낌이 딱 벌레인데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이라 바로 멈추지 못하고 조금씩 속도를 줄여 갓길에 세우고 보니 엄청나게 큰 말벌 같은 게 죽어서 내 다리 위로 떨어진 거다.(빠르게 달리는 차체에 부딪히고 창문 안쪽으로 떨어짐.) 꺅 하면서 옆에 있던 종이로 쓸어내려 바닥으로 떨어뜨렸는데 눈에 보이지 않으니 더 무서워졌다. 그냥 기절한 거면 어쩌지 하면서 며칠을 벌레(시체)와 함께 드라이브를 해야 했다.
 고속 주행 중 벌레가 차 안으로 들어오면 난 사고 나서 죽겠구나 싶었다.


⇝ 불
 어렸을 때부터 불을 정말 무서워했다.
 초등학교 2학년쯤 The Towering Inferno(타워링) 영화를 본 게 계기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고층 빌딩에 화재가 발생하는 재난영화로 1970년대 작품이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불에 타 죽는 장면이 엄청나게 충격이었던 것 같다.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면 지하는 가지 않으려고 했고(여차하면 창문 깨고 도망치려고)
 집을 구할 때도 비상탈출구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뛰어내렸을 때 죽지 않을 저층을 선호한다.


 신기한 건.. 귀신은 무서워하는 사람한테 보인다고 했던가.
 꼭 벌레를 목격하는 건 나고(그 뒤로 싱가포르 출장을 수없이 갔는데 바퀴벌레를 목격하지 않는 경우가 드물었다)
 실제 화재 현상에서 피신한 적도 두 번 있다.
 한 번은 회사 사무실 지하 중국집에서 불이 나 그 뒤로 이틀을 출근하지 못했었다.
 다같이 22층에서 계단으로 내려갔는데 연기가 나고 냄새가 나서 겁이 났었다.
 큰 불은 아니었지만 45층짜리 건물 전체에 퍼진 연기를 빼느라 빌딩 출입이 이틀 금지됐었다.

 그리고는 몇 달 지나지 않아 내가 사는 오피스텔 같은 층에서 불이 났다.
 새벽 2-3시쯤 자다가 문득 깼는데 복도에서 아주 약한 목소리로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순간 몸이 굳고 침대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었는데
 무슨 소린지 확인은 해야 할 것 같아 살금살금 현관 문 쪽으로 가보니 연기 냄새가 났다.
 얼른 외투를 걸치고 핸드폰 챙기고 잠옷 바람으로 문을 열었더니 온 복도에 연기가 자욱해 몸을 숙이고 계단을 찾아 1층까지 내려가 빌딩을 빠져나왔다.
 소방차가 오고 한 명이 실려나오고 무서워서 택시 타고 부모님 집으로 가서 잤다.
 그 뒤로도 일주일 정도 부모님 집에서 지내고 오피스텔에 다시 가보니 그 잠깐에도 재가 가득 쌓여 모든 표면을 닦고, 그릇 등을 다 씻어야 했다는..


⇝ 아무 의미가 없을까봐..
 '가장 두려운 게 무엇인가요' 질문의 의도는 사실 벌레, 불 같은 tangible한 게 아닌, 추상적인 거다.
 내가 가장 두려운 건 아마도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것, 내가 이 세상에 있었다는 흔적이 하나도 없는 것.. 
 이런 종류의 두려움이다.
 한 마디로 내 인생이 아무 의미 없을까 두렵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회사를 고를 때도 그 회사의 사명(mission)과 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우선순위에 두는 게 아닐까.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좋아하는 quote가 있다.
 우르크 소녀 파티마를 구하고 학교 등록금을 지원하기로 한 강모연에게 유시진이 말한다. "이렇게 만나는 사람들을 다 책임질 수는 없어요.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이에 강모연이 한 말..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파티마의 삶은 바뀌겠죠. 그리고 그건, 파티마에겐 세상이 바뀌는 일일 거예요."





Tuesday, 16 June 2020

Q17. Think about a year ago and a year from now. What has changed?

질문 17. [life 14]
2020년 6월17일(수)입니다.
당신의 2019년 6월과 당신의 2021년 6월을 얘기해 주세요.
1년 전 - 지금 - 1년 후, 당신의 삶 
어떤 게 그대로고, 어떤 게 새롭고, 어떤 게 변화하나요?


⇝ 2019년 6월
 구글 캘린더를 살펴보니 ㅋㅋ 작년 6월은 역시나 출장 중이었다. 뭐 1년 내내 2주마다 옮겨다녔으니..
 5월에는 아시아를 돌고 6월은 서울에서 바로 바르셀로나로 갔다가 파리 찍고 밀라노 찍고 월말에 다시 더블린으로 복귀하는 일정이었다. 
 비행기 타는 게 질려버린 지는 오래고, 2019년에는 정해진 거처 없이 2주마다 짐을 싸는 생활을 하다보니 정말 지칠 데로 지친 상태였다.
 각 나라 사무실에 들러서 우리 팀 사람들이랑 시간 보내고, 같이 일하는 stakeholder들에게 각 나라 사정은 어떤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우리 팀이 어떻게 더 해줬으면 좋겠는지 들어보고 함께 전략을 짜는 출장이라 에너지가 많이 필요했다. 
 일요일 저녁에 도착해서 목요일에 떠난 파리의 경우, 사무실 코앞이 오페라 하우스였을 정도로 중심가였는데 정말 아무데도 가지 않고 숙소-회사만 오가다 떠났던 게 기억난다.


⇝ 2020년 6월
 더블린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1년간 집없는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참을 수 있었던 건 "내년엔 런던을 갈거야"라는 희망이었다. 그리고 여러 고비를 넘겨 워킹 비자를 받고 꿈에 그리던 런던에 입성했는데.. 
지금 나는 왜 서울이지? ㅎㅎ
 작년과 비교하면 나만 달라진 게 아니라 세상이 달라졌다.
 출장이 너무 많아 이렇게는 못 살아겠다고 죽는 소리했던 게 불과 6개월 전이라니..
 지금은 전사적으로 출장 금지다. 
 입사 5주년 기념 두 달 휴가를 쓰면서 뉴질랜드 곳곳을 누비고 다녔던 작년 말이 거의 전생 같이 느껴진다. 드라마에서 마스크 쓰지 않은 사람들, 엘리베이터 버튼을 주저없이 누르는 사람들을 보면 흠칫흠칫 놀란다.

 사무실에 출근해서 회의하고,
 친구를 만나 수다 떨고,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고,
 모르는 동네에 가서 예쁜 가게를 구경하고,
 심지어 그렇게 지긋지긋한 비행도..
 하지 못하는 환경에 놓여보니 그렇게 소중한 거였다니..
  

⇝ 2021년 6월
 나는 어디에 있을까.
 코로나의 위협을 이겨내고 런던에서 버티고 있을까, 다 접고 서울로 돌아왔을까.
 정말 모르겠다.
 내가 회사를 다니고 있을까.

 어느 쪽이 됐든 그 선택을 받아들이고 너무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어디에 있든 건강했으면 좋겠고 내가 의지하고 함께 시간을 보낼 사람들과 함께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