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19 June 2020

Q19. What random events changed your life?

질문 19. [이벤트 2]
우연히 일어난 일이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경험이 있나요?


아무래도.. 구글이겠지?
우연히 내 앞에 나타나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든 건.

통역대학원을 졸업하고 최소 1년 정도는 통역 일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수능 다시 봐서 한의대 가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만 고생해서 졸업했으니 그래도 한 번 써먹어보자는 심정으로)
그래서 졸업을 앞둔 1월부터 살짝살짝 통역을 해보고 있었는데
아는 선배가 괜찮은 프로젝트가 있다며 딱 두 달만 해보라고 연결해줬다.
그게 구글과의 첫 만남이었다.

두 달이 넉 달이 되고 총 4개월의 프로젝트가 끝난 후 입사를 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까지 회사를 다닌다는 건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기에 (전공을 살리고 싶었을 땐 NASA나 연구소, 아님 교수를 생각했고 통역사의 매력은 프리랜서라고 믿었으니까)
거절했다.
난 통역을 하고 싶다고.
정규직이 부담스러우면 일단 계약직으로 해보고 6개월 후에 정규직 전환을 선택하게 해주겠다고 해서
그럼 해볼까 싶어 프로젝트가 아닌 진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 6개월은 모든 게 재밌고 신기했다. 막 세상을 알아가는 어린 아이처럼.
회사는 이런 거구나.. 이메일을 쓰는 법에서부터 회의를 하고 업체를 관리하고 결정을 내리는 등
모든 게 새로운 경험이다보니 하루하루가 재밌었다.

6개월이 지났을 때 갈등을 할 수밖에 없었다.
통역은 기술이라 갈고 닦지 않으면 녹슬기 마련이고
게다가 아직 시작도 안 해본 병아리 통역사로 너무 오래 쉬면 시장에서도 잊혀질 위험이 있었다.
선배와 동기들도 거기서 뭐하냐며 빨리 나오라고 성화였다.

하지만 한 번 맛본 구글은 끊어내기 어려웠고
딱 1년만 제대로 정규직으로 다녀보자는 생각으로 전환했다.
딱 1년이 결국 8년이 돼버렸지만..

구글은 나에게 일하는 법, 일하는 기쁨을 가르쳐줬고
사회생활의 모든 첫 경험을 함께 했다.
첫 회의, 첫 이메일, 첫 발표, 첫 출장, 첫 평가, 첫 승진..

내가 원하는 게 뭔지도 알게 됐다.
무언가를 바꾸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나에게 중요하다는 것.
그래서 통역사라는 직업에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게 됐다.
통역사는 speaker의 말이 잘못된 것이라도 그대로 옮겨야 하는 숙명을 가진 직업이니까.
대신 내가 보람이나 재미를 느끼는 분야의 통역이나 번역은 가끔 한다.
회사를 그만둬도 통번역으로 먹고 살 순 있겠지 싶은.. 나에게 보험 같은 존재라고 할까.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나의 가치관이 정립됐다.
사무실이 내 집이고 구글이 곧 내 삶인 나날들을 보냈다.

물론 퇴사할 때 그 대가를 치뤘지. 😂
(아직 결혼도 못 해봤지만) 이혼하는 심정으로 퇴사했다.
여전히 사랑하지만 함께는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어 헤어지는 느낌으로.
다시는 이만한 남자를 만날 수 있을까?
내가 이 사람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정말 연인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심정으로 떠났다.
지금은 다른 남자(아니 회사)를 만나 잘 지내고 있지만.

내 인생은 구글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하면 너무 드라마틱한 것 같지만
"Google happened"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나에게 큰 영향을 줬다.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고 (너무 자주 놀러가고)
앞으로도 응원할 거다 (주식도 아직 들고 있지만 돈 때문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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